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나서 우리 가족의 일상은 완전히 뒤집혔다. 처음에는 그냥 며칠 입원하면 금방 나아지실 줄 알았다. 병원에서 퇴원을 종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진짜 문제였다. 제주시요양병원을 몇 군데 알아보고 상담도 다녀봤지만, 막상 시설을 결정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막막했다. 상담실장의 말들은 전부 다 좋아 보였다. 식단도 잘 나오고, 물리치료사도 상주하고, 24시간 간호사가 대기 중이라며 팸플릿을 건네주는데 그 종이 너머의 현실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낯선 곳에 홀로 남겨두고 돌아오던 날
결국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입소 비용은 한 달에 대략 18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 여기에 기저귀 값이나 간식비 같은 추가 비용이 붙으니 무시할 금액은 아니다. 처음 모시고 가던 날, 어머니는 영문도 모르신 채 휠체어에 앉아 계셨다. 내가 자꾸만 죄송하다고 말하니까 어머니는 오히려 나보고 왜 자꾸 우냐고 하셨다. 그 말씀이 더 가슴을 찔렀다. 병실 문을 닫고 나오는 복도에서 들리는 소음들, 낯선 냄새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집에 돌아와서 빈 방을 보는데,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통합돌봄이라는 말과 현실 사이의 괴리
요즘 정부에서 강조하는 ‘살던 곳에서의 노후’라는 말들이 가끔 뉴스를 통해 들린다. 그런데 막상 어머니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니까 그런 시스템이 피부에 와닿지가 않는다. 청양군 같은 곳에서는 노쇠 예방 사업을 한다지만, 당장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든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요양원과 병원의 경계도 참 모호하다. 의왕시립 노인요양원이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으면서도 ‘과연 그곳에 가면 우리 어머니는 행복하실까’라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등급이라는 게 시설의 위생이나 행정 절차를 평가하는 거지, 그 안에서 느끼는 고독까지 책임지는 건 아니지 않나 싶다.
연명치료 거부 서류를 보며 드는 생각
정말 혼란스러웠던 건 연명치료 거부 신청서였다. 몇 년 전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미리 써두셨던 서류가 있었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니 이게 정말 맞는 건가 싶어 손이 떨렸다. 주변에서는 요양원 촉탁의를 통해 상황을 정리하면 된다고 쉽게 말하지만, 그 결정이 한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걸 생각하면 누가 감히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식사하다가 기도로 음식이 넘어가 응급 상황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머릿속이 하얘졌다. 심폐소생술로 다시 심장은 뛰는데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보면서 내가 뭘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오히려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아닌지 계속해서 자문하게 된다.
면회 시간의 짧은 대화가 남기는 것들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 면회를 간다. 가수 배일호 씨가 시흥의 어느 요양원을 방문해 무료 공연을 했다는 기사를 보며, ‘우리 어머니도 저런 걸 보면 조금 웃으실까’ 싶어 마음이 짠했다. 면회 가서 드리는 말씀은 항상 비슷하다. “엄마, 금방 나아서 집에 가야지.” 그런데 어머니는 이제 대답조차 힘겨워하신다. 간호사들은 잘 보살피고 있다고 하지만, 면회 시간마다 느껴지는 어머니의 눈빛은 내가 알던 그 활기찬 분의 모습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고민만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앞으로 더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관악구에 있는 다른 요양원도 알아볼까 고민했다. 지금 있는 곳보다 조금 더 체계적인 시스템이 있을까 싶어서다. 하지만 옮긴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입주 요양보호사를 써서 집에 모시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비용 문제와 우리 집 구조상 현실적으로 어렵다.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일단은 지금 계신 곳에서 잘 지내시기를 바랄 뿐이다.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돈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게 정말 최선일까, 아니면 그냥 내가 편하자고 선택한 일일까. 정답이 없는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그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