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까지만 해도 엄마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병원 복도에서 의사가 건네던 차가운 말들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서울의 큰 병원들은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지만, 재발은 너무 빨랐고 그다음부터는 모든 게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췌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만 해도, 우리는 주변에서 말하는 강서요양병원이나 송파암요양병원 같은 곳들을 하나하나 찾아보며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엄마는 항암 5차를 끝내고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했다. 병실에 들어설 때마다 느껴지는 소독약 냄새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그 ‘호스피스’라는 단어였다.
집이 아닌 병원 복도에서 듣게 된 말들
호스피스 이야기를 처음 꺼낸 건 담당 교수였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마주한 그 순간,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완치를 목표로 달려왔는데 갑자기 종착역을 안내받은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환자를 포기하는 곳이라고 오해했다. 예전에 들었던 몇몇 요양원 프로그램이나 정신요양원 같은 시설들과 비슷한 분위기가 아닐까 싶어 막연한 거부감부터 들었다. 동작구요양병원 근처를 배회하며 시간을 보냈던 날들, 은평구재활병원에서 엄마의 다리 근육이 빠지는 걸 보며 느꼈던 무력감은 지금 생각해도 숨이 막힌다. 아산시요양원까지 멀리 옮겨야 하나 고민하던 때가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병원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가는 길
사람들은 흔히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최근 호스피스 교육 관련 내용을 찾아보거나 재가임종 지원에 대한 토론회 기사를 읽다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환자가 원하지 않는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엄마는 더 이상 CT 검사 결과지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저 통증 없이 조금만 더 머물다 가고 싶어 했을 뿐인데, 나는 왜 그렇게 끝까지 수치에 집착했을까. 인천 계양구에서 한다는 생애말기 통합돌봄 모델이 기사로 나왔을 때, 집에서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절실한지 뒤늦게 깨달았다. 일본의 재택 호스피스나 유럽식 돌봄 모델을 이야기하지만, 당장 우리 가족에게는 그저 오늘 밤 엄마의 통증이 얼마나 될지가 더 급한 문제였다.
낯선 선택지들 사이에서의 고민
고급요양병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홍보하는 곳들은 하나같이 시설이 화려했다. 한 달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비용을 보며 엄마가 과연 이곳을 좋아할지 고민했다. 어떤 곳은 정원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어떤 곳은 재활 위주였다. 서울호스피스병원을 알아보러 다닐 때, 시설이 좋아 보여도 막상 그곳에 계신 분들의 표정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연사조차 과학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기사를 보고 나서는, 집에서 임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체감했다. 보호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병원을 옮겨 다니며 대기 순번을 기다리는 것뿐이라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현실적인 벽
이정숙 씨라는 분이 보건소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도 언젠가 이걸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직 엄마를 보내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인지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서류 한 장으로 생명의 무게를 결정짓는다는 게 너무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예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일은 다시 병원에 가서 간병인분과 상의를 해야 한다. 송파 쪽에 있는 암 요양병원이 조금 더 평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쪽을 다시 가볼까 싶기도 한데, 막상 가봐도 거기가 거기 아닐까 싶어 망설여진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건 대단한 의료 서비스가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 엄마의 손을 잡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줄 수 있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고급 시설인지, 재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지는 사실 그다음 문제다. 어쩌면 내가 지금 찾고 있는 것은 ‘치료’가 아니라 ‘존엄함’에 가까운 무언가인 것 같다. 아직도 무엇이 최선인지 모르겠다. 아마 정답 같은 건 없는 거겠지. 오늘 밤도 엄마는 옆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데, 나는 또 내일 상담 예약한 병원을 어디로 할지 고민하며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켜고 있다.

엄마의 통증 관리만큼 중요한 건, 그 순간에 어떤 말을 해줄 수 있느냐라는 점에 깊이 공감합니다. CT 검사 결과지 보는 것보다 따뜻한 손길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동요양병원 근처 배회했던 기분 저도 이해돼요. 좁은 공간에서 시간만 맴돌면서 답답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죠.
저는 암 요양원 주변을 배회하며 느꼈던 무력감과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 더욱 마음이 복잡해지네요.
엄마의 CT 검사 결과지 보는 모습이 안타깝네요. 통증을 줄이면서 편안하게 가는 게 더 중요할 텐데, 그런 고민이 먼저였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