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뭉치 사이에서 길을 잃은 기분
아버지가 갑자기 거동이 불편해지시면서 집안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에는 그냥 나이 탓이겠거니 했는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혼자 힘으로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조차 버거워하셨다. 그때부터 시작된 게 소위 말하는 ‘등급 신청’ 전쟁이었다.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는 게 그냥 신청서 하나 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공단 홈페이지를 기웃거리다가 숨이 턱 막히는 경험을 했다. 서류 종류는 왜 그렇게 많은지, 우리 아버지 상황이 4등급인지 3등급인지조차 가늠이 안 되어서 전화를 붙잡고 한참을 씨름했다. 결국 당진시 근처의 복지센터였나, 거기서 하는 설명회 같은 게 있다는 소문을 듣고 쫓아갔는데, 다들 나처럼 절박한 얼굴로 앉아 있어서 오히려 기분이 묘했다. 요즘은 사회복지사들도 Chat GPT 같은 걸로 업무 효율 높인다고는 하던데, 정작 보호자인 내가 느끼기엔 여전히 서류 한 장 떼는 것도 첩첩산중이다.
요양원과 요양병원 사이의 모호한 경계
결국 등급은 받았는데, 이제는 어디를 가야 할지가 문제였다. 다들 ‘요양원’이랑 ‘요양병원’ 차이를 설명해주는데, 막상 현장 가서 눈으로 보면 그 경계가 참 애매하다. 요양병원은 의료법상 병원이라 간호사가 상주하고 처치가 가능하다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대략 한 달에 150만 원에서 200만 원은 기본으로 잡아야 하고, 식대나 기저귀 값 같은 비급여 항목이 붙으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반면에 요양원은 생활 돌봄 위주라 비용 부담은 좀 덜하지만, 아버지처럼 파킨슨 약을 꼬박꼬박 챙겨야 하거나 가끔 호흡이 불안정할 때는 마음이 영 편치 않다. 상담하러 갔던 곳은 시설이 꽤 깔끔해 보였는데, 상담실 의자에 앉아 견적서를 받아드니 이게 사람 사는 곳 비용인가 싶어 멍해졌다. 옆 동네 요양원 비용은 월 80만 원 정도라는데, 왜 이렇게 가격 차이가 나는 건지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고 답답했다.
2년마다 돌아오는 보수교육과 요양보호사의 현실
뉴스를 보니 구로구에서는 요양보호사 보수교육비를 지원해준다는 소식이 있더라. 우리 아버지를 돌봐주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정말 성실하신 분이라 늘 고마운 마음인데, 이분들이 2년에 한 번씩 8시간 넘게 교육을 받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닌 것 같다. 사실 그 교육받는 시간 동안 우리 아버지는 누가 돌보나 싶은 걱정도 들고. 복지 제도라는 게 촘촘하게 짜여 있는 것 같아도, 막상 우리 가족이 그물망에 걸려 굴러가기 시작하면 참 헐겁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정부에서 지원을 해준다, 제도를 고친다 말은 많은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고 지쳐 보인다. 요양보호사 선생님께 커피 한 잔 건네면서도, 이분들 처우가 조금 더 좋아져야 우리 아버지도 더 잘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의료 판단이 필요한 순간의 공포
가장 무서운 건 역시 아버지 상태가 급변할 때다. 콧줄을 끼워야 한다거나, 욕창이 생겨서 소독이 필요하다거나 하면 일반 요양원에서는 대처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정말 선택의 여지 없이 요양병원으로 밀려나야 한다. 의료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건 곧 돈이 많이 든다는 뜻이기도 해서, 통장 잔고를 보며 한숨 쉬는 날이 늘었다. 어제는 파킨슨 치료제 용량을 조절해야 할 것 같아서 담당 의사한테 전화를 했는데,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연결조차 쉽지 않았다. 병원비가 비싸다고 서비스가 다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싼 곳을 찾자니 나중에 문제가 생길까 봐 덜컥 겁부터 난다. 오늘도 밤중에 아버지 숨소리 한번 체크하고 나면 잠이 다 깨버려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넋두리나 쓰고 있다.
선택은 했지만 마음은 계속 불편함
결국 당장은 근처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면서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다. 낮에 거기 다녀오시면 그래도 사람 구경도 하고 밥도 챙겨 드시니까 조금은 나아지시겠지. 하지만 이것도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걸 안다. 나중에 상황이 더 안 좋아지면 결국 요양병원으로 모셔야 할 텐데, 그날이 오는 게 무서워서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주변에서는 다들 그렇게 한다고, 나만 힘든 거 아니라고 위로해주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싶다. 시설 한 곳 골라놓고도 여기가 정말 최선이었는지, 더 꼼꼼히 알아봤어야 하는 건 아닌지, 매일 밤마다 머릿속으로 리스트를 다시 짜보곤 한다. 이게 과연 끝이 있기는 한 걸까.
